교양

조지오웰의 <1984>을 읽고 / 고전 명작 / 책 독후감

귀차니즘 감자 2022. 8. 25. 18:40

조지 오웰 사진 / 출처: Google

1984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어쩌면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84에 나오는 정치체제는 실존하니까. 주인공 윈스턴은 외부당원으로서 충실히 일한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는 체제에 반항을 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제에 저항한다.

윈스턴은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전제 정치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기억 하고 있던 것이 실제로 사실로 존재하는 증거 또한 발견한다. 그리고 1984의 세계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아니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고 도 실천한다. 자신이 믿던 구원의 세력에게 선택 받는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 일어나게 되는데,

오브라이언이라는 작자는 사실 골드스타인 믿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당의 소속이었고 주인공을 고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결국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패배하여 당의 존속되어 죽음을 맞이하는게 이 책의 스토리이다.

 

읽으면서 나름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1984은 소설이 아닌 다른 평행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표현 한 듯 구체적이고, 사실적인것이 참으로 소름 돋는 점이다. 조지 오웰은 1945년 즉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런식으로 구상 할 수 있었는지 대단한다. 이 책은 한 명의 개인이 전체주의에 반항 할 수 있는 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소설에서는 철저히 패배한다.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힌트를 제공하는데, 바로 85%의 노동자 계층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1984 세상은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능은 자연스레 자유를 갈망하고, 또 그것을 희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가 보여주는데, 우리나라는 어느정도 전체주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압도적으로 높은 밀도를 지닌 CCTV 설치, 그리고 준독점 IT 플랫폼들이 행하는 사찰, 통제이고 대부분 차량에 설치되어있는 블랙박스는 국가에게는 움직이는 CCTV가 되어준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통제에 익숙하다. 우리는 CCTV를 보면서 감시 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아닌, 오히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정감을 얻을 정도이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만약 이를 지속해서 허용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안정을 핑계로 더 많은 통제, 더 많은 감시를 행 할 것이 분명하고 통제의 정도는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IT 기업들이 행하는 사찰에 분노해야 하고, 격분 해야한다.

또 국가 주도하여 행하는 통제와 감시를 철저하게 역으로 감시하고 사찰해야 한다.

어떠한 것에도 권력은 집중되어서 안되고 철저하게 분산되어야한다. 그것이 인간이 행복을 갈망하는 자유 또 자유를 갈망하는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여부와는 관계 없이 자유는 갈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민중 대부분은 자신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 이유는 한 시대의 권력 체계가 그렇게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도, 로마시대의 노예들도, 조선시대의 천민과 백정들도 수많은 시대에 존재했던 지배계층은 그들의 진정한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현대시대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국가에 톱니바퀴 인생에 안주하며 행복해한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한 권력에 톱니바퀴가 아니라 한 세계에 하나의 기계가 될 수 있고, 한 세계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늘 인지하며 살아가야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니까.